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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25일 |
Recriminations and Regrets Follow Suicide of South Korean

일요일,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의 장례 제단 앞에서 애도하는 국민들
한국 국민들은 흰 국화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시 분향소에 놓았다. 지난 일요일, 많은 국민들은 한 때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청렴한 정부를 위해 노력한 투사가 매우 굴욕적인 뇌물 혐의로 인해 자살로 내몰리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 국민들은 그들의 분노를 검찰과 보수 언론으로 돌렸다. 검찰과 보수 언론은 노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뇌물 혐의로 무자비하게 추궁했다. 또한 다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지휘하였고 압박수사로 인한 자살이라는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여야 한다며 비난하였다.
다른 일부는 노 전 대통령이 한국의 권위주의 유산의 희생자라며 깊은 비탄을 토했다. 이는 현직 대통령이 행해 온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거의 악습같은 의식처럼 계속되어 온 일로도 알 수 있다.
강원택 숭실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에서는 전임 대통령을 처벌하여 지지율을 높이려는 일이 정치적 악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계기로 이 악습을 깨어야 합니다.”
전임 대통령의 업적을 재임 기간 중의 정책 실패로 정의하려는 악습은 수 년 간의 독재 정치가 종식된 1990년대 들어서, 한국이 스스로를 새로운 민주국가로 다시 정의하려 고심하는 과정에서 뿌리를 내렸다. 한국 국민 다수는 처음으로 민주적 과정을 거쳐 선출된 정부가 오랜 기간 민주주의를 거부해 온 전임 대통령을 처벌하는 광경에 고무되었다.
예를 들자면, 민주화 투사를 진압하며 200명 이상을 사살한 군사 독재자 전두환이 죄수복을 입은 광경은 한국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정치학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다수조차도 한국의 권위주의적 과거 청산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조사로 인해 권위주의가 남긴 유산을 최소한 두 가지 발견했다고 말한다. 즉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과 감시와 제재가 거의 없는 사법 절차이다. 특히 검찰에 있어서는 감시와 제재가 전무하다.
현재까지, 적어도 노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 혐의는 토요일 아침 절벽으로 내몰려 자신을 던진 극적인 죽음에 대한 충격과 슬픔에 압도되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몇 주 전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후원한 기업가가 재임 중 부인 권양숙 씨와 아들, 조카에게 6백만 달러 이상을 주었다는 사실을 시인했으나 뇌물 혐의는 부인했다. 또한 돈을 받은 사실은 몰랐으며 임기가 끝나고서야 알았다고 밝혔다.
최측근의 발언에 따르면 부인 권양숙씨가 받은 돈 대부분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의 학비에 사용되었다. 학벌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한국에서 고졸 학력으로 독학해 변호사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코 많은 국민의 진심어린 존경을 얻지 못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탄탄한 경제를 이끈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국민들의 분노는 청와대와 검찰의 유착, 그리고 유착으로 인한 노무현 전 대통령 및 다른 전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로 향했다. 청와대와 검찰의 유착 의혹 역시 과거 권위주의적 비민주화시대의 유산이다. 당시 검사들이란 군사독재정권의 공범이며 사법체제를 이용해 군사독재정권의 정적을 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연세대학교 문정인 정치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검찰은 가장 전지전능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권력은 과거 독재정권의 유산이며 아직도 한국 국민에게 위협적입니다.”
문 교수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을 견제하는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약하게 하여 실제로는 결국 검찰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말았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한국 국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정찰 기관이다. 노 전 대통령은 과거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고영구 변호사를 국가정보원장으로 임명하고 여러 내부 감시 활동을 중지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검찰도 통제하려 하였으나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검찰과 청와대의 유착을 약화시키기는 하였으나 검찰의 권력 일부를 경찰청으로 이관하지 못하였고 수사를 총괄할 대배심제를 통과시키지도 못하였다.
임기 첫 해인 2003년 열 명의 검사를 대동한 유명한 공개토론회를 열어, 그 자리에서 검찰을 ‘사법부가 통제하지 못할 강력한 조직’이라고 불렀다.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을 괴롭혀 온 부패의 고리를 끊고 전임 대통령이 수사망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약화시키고 재벌과의 유착도 없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재임시절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일견 경제정책에 실패한 듯 보였던 사건으로 (원문: seeming to bungle economic policy) 여러 지지자의 등을 돌리게 했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이 다시 물결치고 있다.
수 천 명의 국민들은 덕수궁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 나왔다.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위법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큰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국민들은 전두환의 뒤를 이은 노태우는 재임 중 셀 수도 없는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실에 주목한다. 또한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역시 대기업으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철창신세를 졌다.
노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국민들은 검찰과 보수 언론이 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지난해 내내 금품수수 혐의를 무자비하게 추궁했음을 비난한다. 국민들 대부분은 본인과 가족에 대한 수사를 지시하거나, 최소한 수사를 부추긴 일로 이명박 대통령도 비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나고 자란 봉하마을에서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화환을 짓밟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들처럼 부패한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부패한 독재자나 다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30년 전으로 후퇴했습니다.”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이동준(31)씨의 의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의 부패정권과는 달리 청렴함을 자랑스레 여기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측근에 의하면 최근에 먹지도 못하고 평소에 취미였던 밤 늦은 시간의 독서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서에서는 지지자들을 실망시켜 죄송하다고 적었다.
정치학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검찰에 대한 반감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문 교수는 국회가 검찰과 외관상으로 불확실한 주장을 흘린 언론사를 공식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불확실한 주장으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은 더욱 심한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전직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복수라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012년까지 악순환이 끝날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는 시점 말입니다.” 서울 분향소에 찾아온 지지자 일부는 정치적 복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즉,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 역시 퇴임 후 그 자신이 했던 일과 비슷한 정치적 복수를 당하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원문: http://www.nytimes.com/2009/05/25/world/asia/25iht-korea.html?pagewanted=1&ref=world
SEOUL, South Korea — As South Koreans laid white chrysanthemums at makeshift memorials for their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many said Sunday that the once-popular champion of clean government had been driven to suicide by more than humiliating bribery allegations.
They directed much of their ire at the prosecutors and conservative media who relentlessly pursued the accusations of corruption against Mr. Roh and his family. Many accused the current president, Lee Myung-bak, of orchestrating the investigation, a move that could become a political liability for him.
Others expressed deeper misgivings that Mr. Roh was a victim of the legacies of South Korea’s authoritarian past — most notably the near ritual of incumbent presidents presiding over investigations of their predecessors.
“It has become a bad political habit for presidents in South Korea to try to gain support by punishing the former president,” said Kang Won-taek, a politics professor at Seoul’s Soongsil University. “What happened to Roh Moo-hyun shows that it is time to break this habit.”
The tendency to define a presidency by the failings of the one that came before took root as the country struggled to redefine itself in the early 1990s as a young democracy after years of dictatorships. Many Koreans were exhilarated as the first democratically elected governments punished the men who had resisted democracy for so long.
The sight of former President Chun Doo-hwan — a military ruler blamed for a crackdown of pre-democracy protesters that ended in 200 deaths — being paraded in a prison jumpsuit proved cathartic for the nation.
But political experts, and even many average Koreans, say that their nation’s struggle to shed its authoritarian past was never finished, and that investigation of Mr. Roh highlighted at least two other legacies: a powerful presidency and a justice system with few checks and balances, especially on its prosecutors.
At least so far, the subject of Mr. Roh’s culpability has been put aside, overwhelmed by the shock and sadness over his dramatic death on Saturday, when he threw himself off a cliff. In the weeks before that, he acknowledged that a businessman who supported him had given more than $6 million to his wife and son and his brother’s son-in-law while he was in office, but he denied that they were bribes. He said he did not know about the transactions until he left office.
The money for his wife had been used to pay for his son’s tuition at Stanford University, among other things, according to a top aide. In a country where education is key to social status, Mr. Roh, a self-educated lawyer, never won full respect from many people, despite having become a lawyer and the leader of a powerful economy.
Much of the outpouring of public anger since Mr. Roh’s death has focused on the murky ties between the Blue House, as the president’s office is called, and the Supreme Prosecutors’ Office, which led the investigation into Mr. Roh and other former presidents. These suspicions are also a hangover from the pre-democracy days, when prosecutors were seen as military henchmen, using the legal system to attack their political opponents.
“The prosecutors have become the most omnipotent force in Korean society today,” said Moon Chung-in, a political scientist at Yonsei University in Seoul and former adviser to Mr. Roh. “Their strength is a legacy of dictatorship that still affects us.”
Mr. Moon said that Mr. Roh actually ended up strengthening the power of prosecutors by weakening one check on their power: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the South Korean spy service used by military rulers against South Korea’s citizens. Mr. Roh appointed a former human rights lawyer as its director and curtailed many of its internal surveillance activities.
Mr. Roh also tried to rein in the prosecutors, but with less success. Though he weakened links between prosecutors and the Blue House, he failed to pass some of their powers to the police or create grand juries to oversee investigations.
In 2003, his first year in office, Mr. Roh also held a widely watched public debate with 10 prosecutors in which he called the prosecutors office a “powerful organization” that the Justice Ministry had “failed to rein in.”
Mr. Roh also came to office with promises to break the cycle of corruption that has plagued South Korean presidents, and made them vulnerable to investigation. He also vowed to curtail the powers of South Korea’s presidency and sever its links with the country’s “chaebol,” or big-business conglomerates.
Mr. Roh’s death unleashed a renewed wave of sympathy for a former president who had alienated many supporters by signing a free-trade agreement with the United States and seeming to bungle economic policy.
Many of the thousands who turned out at makeshift altars in front of an ancient palace in central Seoul seemed to feel that Mr. Roh had paid too high a price for a relatively petty infraction.
Many noted that Mr. Chun and his successor as president, Roh Tae-woo, were found guilty of accepting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of bribes while in office. Sons of the first two civilian presidents of the era, Kim Young-san and Kim Dae-jung, were also imprisoned for pocketing millions of dollars from large companies.
The mourners lashed out at the prosecutors and the conservative media who had relentlessly pursued accusations of corruption for the past year, after Mr. Roh had left office. Most also accused the sitting president, Mr. Lee, of guiding or at least encouraging the investigations. In Mr. Roh’s native village, Bongha, his supporters trampled a funeral wreath sent by the president.
“President Roh was not just another corrupt president. He was different,” said Lee Dong-joon, 31, an insurance planner. “But Lee Myung-bak is acting the same as the dictators. Our democracy has been set back 30 years.”
The former president, who had prided himself on being above South Korea’s corruption, could no longer eat or focus on his favorite pastime of late-night reading, said aides. In his suicide note, Mr. Roh apologized for disappointing supporters.
Political scientists said the suicide could cause a backlash against President Lee or even the prosecutors. Mr. Moon, the former Roh adviser, said the National Assembly might formally investigate the prosecutors, and the apparent press leaks of questionable allegations, which increased the pressure on Mr. Roh.
“Let’s see if this breaks the cycle of political vendettas” against former presidents, Mr. Moon said. “But we won’t know for sure if the vendettas are over until 2012, when Lee Myung-bak steps down.” Some supporters who gathered in Seoul said they thought the opposite would happen: that Mr. Roh’s suicide almost guaranteed that the current president would also face similar attacks once he leaves office.
* 텔레그래프/타임즈/BBC 기타등등 대충 훑어봤는데 뉴욕타임즈 기사가 제일 괜찮아서 올립니다.
요약하자면
'이 나라 국민들 죄다 우울증에 화병 걸리겠군(;;;;;;)'
'전 대통령들은 완전 썩었던데 왜 그런 선택을 했지?'
'MB, 지 predecessor 까는것도 적당히 좀 하지'
라는 느낌이 묻어 나오는 기사들.
* 나머지도 슬슬 번역해 보겠음. 스압 견디고 읽어주신 분들 감사.
* 근데 정일이형 이 와중에 핵실험 하기에요....-_-
* 앞으로 며칠 간, 노무현 대통령 서거 관련 해외 언론 기사/칼럼을 번역해 올릴 예정입니다. (일본어/영어)
번역의 목적은, 어차피 통 공부가 안 되는 것도 있고-_-
해외신문을 읽다 보면 느끼는 거지만 같은 일을 두고도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실력은 형편없지만 조금은 공유하셨으면 합니다.
* 한국기사랑 비슷한 내용은 되도록이면 번역하지 않겠습니다.
* 일본 극우파 신문은 번역않겠음.; 정신 건강에 안 좋을듯 해서...
* 많이많이 읽어 주시면 감사. 허락 없이 퍼가셔도 됩니다. 출처 안 밝히셔도 됩니다.
* 댓글 관리할 자신 없어요. 소통을 거부하는 건 아니니 오역은 트랙백으로 부탁드립니다.
# by | 2009/05/25 17:08 | 번역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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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5월 25일 |
盧前大統領の死―隣国の政治の悲劇を思う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이웃 나라(한국) 정치의 비극을 생각하다
생각도 못했던 참으로 비통한 결말이다. 약 1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고하였다.
어제(23일) 이른 아침 자택의 뒷산에 경호원과 같이 올랐고 암벽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가족 앞으로 짧은 유서를 노 전 대통령이 남겼다고 측근인 문 변호사가 밝혔다. 자살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의 뇌물 수수 용의자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회사를 경영하는 후원자가 노 대통령의 아내와 친족에게 자금 640만 달러를 제공하였다. 절대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에게 건네는 뇌물로 보아야 한다는 판단에서 나온 일이다.
“퇴임 후에 알았다”라고 노 대통령은 혐의를 부인하였으나, 부인이 돈을 받은 것은 인정하며 자신의 홈페이지에 “민주주의와 정의라는 말을 할 자격을 잃었다”고 적었다. 검찰 출두시에는 “면목없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법적 처분을 결정할 최종단계에서의 서거이다.
이번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의혹은 한국 국민들에게 가장 큰 정치적 실망을 가져다주었다.
지연과 혈연, 학벌이 위세를 부리는 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정치와 돈은 떼려 해야 뗄 수 없다. 그런 사회를 바꾸고 싶다. 노무현 정권은 국민의 그런 뜨거운 기대에 부응할 양으로 등장했을 터이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임 대통령은 본인이 부패에 연루되었고, 이어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둘 다 자식이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전임 대통령들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뇌물 없는 투명한 정치를 외쳤다. 인권변호사로서 활약하고, 그에 대립하는 야당(한나라당)으로부터도 금전문제에 있어서는 깨끗해 보이는 서민파 대통령이었다.
이제껏 정권과 검찰은 유착이 심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독립을 보장하고 부심제 도입을 포함한 사법개혁을 지지했다. 과거 권력범죄를 해명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런 노 대통령도 과거의 인습으로부터는 단호히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역사의 청산”을 바랐으나 결국 실패하고, 사법의 심판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
한국에서는 서거 직후 수사가 강압적이었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적 대립의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비극을 정치적 대립으로만 돌려서는 안 된다.
세계는 전례 없는 경제위기에 빠져 있다. 수출의존적인 한국 경제 또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대립마저 심해져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안정을 바라는 일본 역시 무엇보다 한국이 안정을 찾길 바라며 (한국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높여 주길 바란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한국에는 독재정치에서 민주주의로의 일관된 흐름이 존재한다. 그리고 최근 20년여 동안 민주주의 의식을 고양시켜 시민 사회가 성숙하였고, 경제 발전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거두어 왔다.
이런 실적을 발판으로 하여 정치 안정으로 걸어갔으면 한다. 그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 아닐까.
盧前大統領の死―隣国の政治の悲劇を思う
思いもかけない、何とも悲痛な結末である。1年あまり前まで韓国の大統領だった盧武鉉氏が亡くなった。
きのう早朝、自宅の裏山に警護員とともに登り、岩場から落ちた。
家族あての短い遺書を盧前大統領は残していた、と側近の弁護士が明らかにした。自殺と見られている。
盧氏は在任中の収賄の容疑者として検察の聴取を受けた。会社を経営する後援者が盧氏の妻や親族に640万ドル(約6億1千万円)の資金を渡したが、絶大な権限が集まる大統領制のもと、大統領への賄賂(わいろ)として問うべきではないか、との判断からだ。
「退任後に知った」などと盧氏は容疑を否認していたが、身内が受け取ったことは認め、自分のホームページで「民主主義や正義という言葉を述べる資格は失った」と記していた。出頭時も「面目ない」と国民にわびた。
検察が盧氏の法的処分をどうするかを決める最終段階での死である。
今回の盧氏周辺の資金疑惑は、韓国の国民に対して、これまで以上に政治への深い失望を与えてきた。
地縁や血縁、学閥が幅を利かす。日本もそうだが、政治とカネが切り離せない。そんな社会を変えてほしい。盧政権は、国民のその熱い期待にこたえるべく登場したはずだった。
全斗煥、盧泰愚の両元大統領は自身が腐敗に問われ、続く金泳三、金大中元大統領は、いずれも子息が不正資金の受け取りで断罪された。
それもあって盧武鉉氏は裏取引のない透明な政治を唱えた。人権派弁護士として活躍し、対立する野党からもカネに清潔と見られる庶民派だった。
かつて政権と検察の癒着が激しかったが、盧氏は検察の独立を保証し、陪審制導入を含む司法改革を支えた。過去の権力犯罪の解明にも切り込んだ。
そういう盧氏も旧弊は断ち切れなかったということか。「歴史の清算」を目指したのにできず、司法の裁きに耐えかねたのだろうか。
韓国では早速、捜査が強引だったとの批判が噴き出している。政界対立の火種にもなりかねない。だが、今回の悲劇をそうさせるべきではない。
世界は未曽有の経済危機にある。輸出に頼る韓国経済もまた、たいへんに苦しい状況だ。ここで政治も対立を深めてしまってはよくない。
朝鮮半島の安定を望む日本にとっても、まず韓国が安定してほしいし、存在感を高めてもらいたい。
曲折はあっても、韓国には独裁から民主への一貫した流れがある。そしてこの20年あまり、民主主義を深めて市民社会を成熟させ、経済の発展という輝かしい成果をあげてきた。
こうした実績を踏まえ、政治の安定に歩みを進めてほしい。それが、盧氏の死を無にしない道ではないか。
출처 http://www.asahi.com/paper/editorial.html
* 일본에서 氏란 명칭은 보통 정중한 명칭입니다.
(갑자기 미수다의 '노무현씨 집' 사건이 떠오르네요. 한국어가 서투른 게 문제이지 무례한 발언은 아니었는데...)
원문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노전대통령/노씨를 섞어 쓰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그닥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닌듯.
* 아사히보다도 더 개념없는 일본언론은 대통령 언급없이 죄다 盧氏... 아 ㅅㅂ 한대 때려주고 싶다.
NHK는 아예 한자표기 없이 가타카나로 씨부리는 또라이짓을...
참고로 한자문화권 외국인 중 높은 사람(?)이 아닌 일반연예인 등만 가타가나로 씀- 최지우 권상우 같은 연예인들.
* 번역자가 한국인이니 옮기긴 대통령으로 옮겼습니다.
* 앞으로 며칠 간, 노무현 대통령 서거 관련 해외 언론 기사/칼럼을 번역해 올릴 예정입니다. (일본어/영어)
번역의 목적은, 어차피 통 공부가 안 되는 것도 있고-_-
해외신문을 읽다 보면 느끼는 거지만 같은 일을 두고도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실력은 형편없지만 조금은 공유하셨으면 합니다.
* 한국기사랑 비슷한 내용은 되도록이면 번역하지 않겠습니다.
* 일본 극우파 신문은 번역않겠음.; 정신 건강에 안 좋을듯 해서...
* 많이많이 읽어 주시면 감사. 허락 없이 퍼가셔도 됩니다. 출처 안 밝히셔도 됩니다.
* 댓글 관리할 자신 없어요. 소통을 거부하는 건 아니니 오역은 트랙백으로 부탁드립니다.
# by | 2009/05/25 01:35 | 번역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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