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확실한 거

2009년 12월 23일

오늘의 짤방은 금속활자 발명시기에 그렸던 버블

1999년 12월 23일에는
뭘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10년 후의 내가 이러고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는거


지금 내 동생 나이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을 하며


국제경제법 기출문제를 편다;-_-



그림그리고싶다 미친듯이원고하고싶다 라그나로크전투프리키우고싶다 그저세상을좀평화롭게만들고플뿐인데 왜이렇게공부를하고있지;.....

by 혜믹 | 2009/12/23 00:27 | 일기 | 트랙백

          ㅇ아아악

2009년 09월 10일

신석기 시대의 하드를 뒤져 찾아낸 그림
제목: 코후비려고_눈치보는_아가씨.jpg 같은건...아님

내가 요즘 잘 하는 또라이짓 중에
'10분만 자자고 결심하고 6시간 죽은듯이 자기'
가 있다.

-_- 왜 이놈의 공부는 해도 해도 안 끝날까. 원래대로라면 이 과목 지난주에 끗! 했어야 되는데.....

혹시 머리 자체가 글러먹은 건가 싶어서 진지하게 돈내고 IQ테스트까지 받아봤는데
적어도 IQ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명.... 뭐가 문제일까??







옛날 하드를 뒤져보니 꽤 재밌는게 많이 나온다;
고백하긴 부끄럽지만 그림그릴때 난 상당히 순수하게 기뻐한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걸로 직업 갖기는 애저녁에 포기한 듯 하지만.. 잘 그리지도 못하고...
한 마디로 특기가 아니라 취미라는 뜻인데

사실 나는 그림자체 그리는 게 좋다기보다는 색상표를 하루종일 바라보는 게 즐거웠다.-_-;
내가 특히 좋아하는 종류는 paintshop의 색상표인데
움직이면 색깔이 미묘하게 바뀌는 게 무지 예뻐서 가슴설렌다 ㅠㅠㅠ
밑에 웹용 색상이 숫자로 바로 찍혀나와서 좋아하기도 했고...
제일 자주 썼던 툴은 opencanvas였는데
이상하게 오캔 색상표는 별로 정이 안 감.


어라???!? 내가 언제 이런 것까지 그렸지?????;;;;; 아가씨 머리숱이 빈약한거보니
좀 그리다 귀찮아서 관둔 거 같긴 한데 ....

고3때 공부는 안하고(아 오늘 취소선 많이 들어가네) 열심히 그린 이순신 장군님. 명민좌 수염이 좋다.

아이리스 섭에 잠들어 있는 내 몽둥이 복사(지금은 레어 캐릭터인 힘프리)ㅠㅠㅠ

by 혜믹 | 2009/09/10 20:08 | 일기 | 트랙백

          여러가지 이야기.

2009년 08월 24일

짤방은 한오백년전 그렸던 고대자료. 당시 투니버스에서 파워퍼프걸 1시즌 방영할 때였는데...
고등학생 때였나 중딩때였나 orz 부끄러운 얘긴데 지금 그리라면 못그린다.

아마 올려놓고 놔두면 추석이 될 거 같아서 올린다. <- 참 대단한 시간감각


얼마전에 지하철2호선 타고 가는데
관광객이신듯한 일본아가씨들 둘이서 타셨다 ㅡ.ㅡ
근데 가만 얘기를 들어보니 홍대로 가셔야 하는데 반대 방향으로 가고 계셔따

그래서 이거 반대방향이라고 알려드렸지.... 담역에서 반대로 타시라고
내리면서 하시는말 '오오키니'
-_-;
음.......... 한화도 싼데 한국에서 돈 많이 많이 쓰고 가시라고 속으로 빌었다.


작년 이맘때쯤 오사카 고깃집에서 같이 일하는 할매들이랑 수다떤게 이렇게 폐해가 클 줄은 ㅠㅠ
그래도 그때가 제일 대학생스러웠지...
비록 밥도못먹고 36kg까지 빠져보고 살도 까맣게 타고 길바닥에서 쓰러져봤긴 하지만...


하도 공부하기 싫어서 다른 동인녀 포스팅 보는데
(모 음성파일의 칸사이벤을 못알아듣겠다는 내용이었고, 친절하게 링크를 걸어놓으셨음)
NHK뉴스말고는 일본드라마도 TV통해서 보지 않으면 안 보기 때문에...
오랜만에 생생한 일본어를 듣는 셈이었는데

=_= 뭐지..? 도쿄벤 따위보다 친숙한 이 느낌은.


by 혜믹 | 2009/08/24 21:27 | 일기 | 트랙백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 반기문 - 포린 폴리시 반박문

2009년 07월 02일

원문의 기사를 요약해 쓴 한국어 기사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362023.html


-_- 길어서 원문은 번역 안함. 귀찮음. 그냥 저런 내용이니 보면 됨.


마크 레온 골드버그의 반박문

반기문 사무총장은 분명 비난을 받을 여지는 있다. 전임자 코피 아난 사무총장과는 달리, 반 총장은 ‘총장’이라기보다는 ‘사무’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코피 아난 총장이 도덕적 지도력으로 ‘세속적 교황’이 되길 바랐던 반면 어느 누구도 반 사무총장이 그런 역할을 하길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임기간 2년 반 동안 반 총장의 외교 방식은 단순히 인기 끌기를 넘어선, 조용하며, 직접적인 외교임이 분명해졌다.

이 외교 방식에는 이점도 결점도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반 총장은, 제이콥 헤일브룬이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이며 역대 사무 총장 가운데 ‘실패의 기준을 세운 사람’ 이라고 주장한 바와는 크게 다르다.

헤일브룬은 재능 있는 기고가이지만 반 총장의 재임 초기인 2년 반을 분석한 글은 2007년부터 국제연합이 맡아 온 일과 얼핏 볼 때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보자. 헤일브룬은 반 총장이 기후 변화에 무관심하다고 주장하는데, 완전히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기후 변화 하면 반 총장을 떠올릴 정도로, 반 총장은 기후 변화를 중대한 일로 다루어 왔다. 2007년 9월 니콜라이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부터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앨 고어에 이르는 세계의 지도자들을 뉴욕의 국제연합 본부로 초청해 기후변화 회담을 열었다. (포린 폴리시 지는 이 사건을 게재하기까지 했다!) 또한 9월 기후회담을 반복하여 회담이 열릴 예정인데, 이는 12월에 덴마크 코펜하겐의 기후변화 회담의 여세를 몰기 위한 의도이다.

반 총장이 2년 반 동안 여하튼 ‘위험한 존재다’라는 헤일브룬의 독단 중심에는, 반 총장이 이렇다 말할 만한 성공을 거둔 적이 없으며 조용한 외교 방식은 국제연합을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여기서 두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첫째, 2년 반이라는 기간은 사무총장에 대해 그렇게 성급한 판단을 내릴 만큼 긴 시간은 아니다. 사무총장 대부분이 5년 혹은 10년 동안 재직했다. 둘째, 헤일브룬은 반 사무총장의 자리가 지구의 문제거리를 좌지우지하는 모든 권력수단을 가진 자리인 양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사무총장은 대단한 직위이지만 반 사무총장은 그 직위가 가져다주는 도덕적인 권위 이상의 실질적인 힘은 없다.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은 그 도덕적 권위를 잘 다루어 인권 신장을 주장하였다. 반 사무총장으로서는 그의 도덕적 자산을 기후 변화에 쓰고 있다.

반 사무총장은 물론, 많지는 않지만 국제연합 사무국의 운영방식에 대한 권한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반 총장은 총회의 동의 없이는 새 부서나 과를 만들거나 없앨 수 없다. 하지만 총회에 몇 가지 제안을 하여 새 부서나 과에 대한 주의를 환기할 수 있다. 반 총장이 이루어 낸 중요한 제도적 개혁 하나는 업무가 과중했던 평화유지활동 부서를 둘로 나눈 일이다. 문외한에게는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닌 듯하지만 10만을 상회하는 전장의 평화유지군 운영 방식에 있어 국제연합은 큰 변화를 보인 것이다.

요는, 헤일브룬은 현 사무총장에 대해 일부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사무총장이라는 직위 그 자체에 관해 지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사무총장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더욱 유용한 방법은 사무총장이 직면하는 제도적, 법적 제약 안에서 특정 목표를 이룰 수 있는 한계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단순히 세상의 문제점을 끄집어내 해결하지 못한 사무총장 탓으로 돌리면 비난하기에는 좋다. 하지만 스스로 문제점을 깨닫게 하는 도구로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포린 폴리시 7월, 8월호에 게재한 반기문 국제연합 사무총장에 대한 제이콥 헤일브룬의 발언은 진지한 분석이 아닌 터무니없고 우월감에 가득찬 논설이다. 다른 이들이 반 사무총장이 ‘거시적인’ 주제, 즉 기후 변화와 세계 식량 위기 해결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헤일브룬은 진실을 흐리는 것만을 보았다. 다른 이들이 부드러운 말투와 굳건한 결단력이 있는 반 사무총장이 가자 지구의 혼란에서도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헤일브룬은 ‘쓸모없는 자’, ‘위험한 한국인’만을 보았다.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지나간 미얀마에서 인도적 지원을 모은 반 총장의 위기 해결 능력은 폭넓은 호평을 받았다. 워싱턴과 런던에서 금융 위기의 여파로 고통을 겪는 수많은 하층민의 고난을 이야기하여 G-20 정상들과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참여했을 때처럼 말이다. 반 사무총장의 웅변 스타일과 억양은 문제 해결력과 사태를 꿰뚫어보는 외교적 결단력과 비교할 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 반 사무총장의 조근조근한 한국식 영어발음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이러한 사실은, 손쉽고 애초에 정해진 결론이나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주제에 대해 쓰는 기자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명백한 일임이 분명하다.


* 오역은 트랙백으로 부탁드립니다.
   무단 저장/ 펌은 상관없음...
* 워싱턴포스트에도 반박문 나왔다는데 .... 헉 원문을 찾을 수가 없다? 내 검색 능력이 저하되다니 ㅡ,.ㅡ
* 일판 뉴스위크가 아이 신나라 하고 올린거 보면 일본+미국의 합작품 같다. (마지막 문장이 암시하는 듯...)

* 에이 몰라 필기한거 정리하고 자야지 ㅠㅠ

* 다음 번역은 좀 더 영양가 있는 걸로 하겠어염.




by 혜믹 | 2009/07/02 22:28 | 번역 | 트랙백

          전 대통령 서거에 한국 국민의 비난과 애도가 이어지다 - 뉴욕타임즈 기사 번역

2009년 05월 25일

Recriminations and Regrets Follow Suicide of South Korean

일요일,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의 장례 제단 앞에서 애도하는 국민들


한국 국민들은 흰 국화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시 분향소에 놓았다. 지난 일요일, 많은 국민들은 한 때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청렴한 정부를 위해 노력한 투사가 매우 굴욕적인 뇌물 혐의로 인해 자살로 내몰리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 국민들은 그들의 분노를 검찰과 보수 언론으로 돌렸다. 검찰과 보수 언론은 노 전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뇌물 혐의로 무자비하게 추궁했다. 또한 다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지휘하였고 압박수사로 인한 자살이라는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여야 한다며 비난하였다.


다른 일부는 노 전 대통령이 한국의 권위주의 유산의 희생자라며 깊은 비탄을 토했다. 이는 현직 대통령이 행해 온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가 거의 악습같은 의식처럼 계속되어 온 일로도 알 수 있다.


강원택 숭실대학교 정치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에서는 전임 대통령을 처벌하여 지지율을 높이려는 일이 정치적 악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을 계기로 이 악습을 깨어야 합니다.”


전임 대통령의 업적을 재임 기간 중의 정책 실패로 정의하려는 악습은 수 년 간의 독재 정치가 종식된 1990년대 들어서, 한국이 스스로를 새로운 민주국가로 다시 정의하려 고심하는 과정에서 뿌리를 내렸다. 한국 국민 다수는 처음으로 민주적 과정을 거쳐 선출된 정부가 오랜 기간 민주주의를 거부해 온 전임 대통령을 처벌하는 광경에 고무되었다.


예를 들자면, 민주화 투사를 진압하며 200명 이상을 사살한 군사 독재자 전두환이 죄수복을 입은 광경은 한국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정치학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 다수조차도 한국의 권위주의적 과거 청산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조사로 인해 권위주의가 남긴 유산을 최소한 두 가지 발견했다고 말한다. 즉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과 감시와 제재가 거의 없는 사법 절차이다. 특히 검찰에 있어서는 감시와 제재가 전무하다.


현재까지, 적어도 노 전 대통령의 금품수수 혐의는 토요일 아침 절벽으로 내몰려 자신을 던진 극적인 죽음에 대한 충격과 슬픔에 압도되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몇 주 전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후원한 기업가가 재임 중 부인 권양숙 씨와 아들, 조카에게 6백만 달러 이상을 주었다는 사실을 시인했으나 뇌물 혐의는 부인했다. 또한 돈을 받은 사실은 몰랐으며 임기가 끝나고서야 알았다고 밝혔다.


최측근의 발언에 따르면 부인 권양숙씨가 받은 돈 대부분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의 학비에 사용되었다. 학벌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한국에서 고졸 학력으로 독학해 변호사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코 많은 국민의 진심어린 존경을 얻지 못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탄탄한 경제를 이끈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국민들의 분노는 청와대와 검찰의 유착, 그리고 유착으로 인한 노무현 전 대통령 및 다른 전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로 향했다. 청와대와 검찰의 유착 의혹 역시 과거 권위주의적 비민주화시대의 유산이다. 당시 검사들이란 군사독재정권의 공범이며 사법체제를 이용해 군사독재정권의 정적을 제거했다.


노 전 대통령의 고문이었던 연세대학교 문정인 정치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검찰은 가장 전지전능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권력은 과거 독재정권의 유산이며 아직도 한국 국민에게 위협적입니다.”


문 교수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을 견제하는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약하게 하여 실제로는 결국 검찰의 권력을 강화시키고 말았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한국 국민들을 감시하기 위한 정찰 기관이다. 노 전 대통령은 과거 인권변호사로 활약한 고영구 변호사를 국가정보원장으로 임명하고 여러 내부 감시 활동을 중지했다.


또한 노 전 대통령은 검찰도 통제하려 하였으나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검찰과 청와대의 유착을 약화시키기는 하였으나 검찰의 권력 일부를 경찰청으로 이관하지 못하였고 수사를 총괄할 대배심제를 통과시키지도 못하였다.


임기 첫 해인 2003년 열 명의 검사를 대동한 유명한 공개토론회를 열어, 그 자리에서 검찰을 ‘사법부가 통제하지 못할 강력한 조직’이라고 불렀다.


노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을 괴롭혀 온 부패의 고리를 끊고 전임 대통령이 수사망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약화시키고 재벌과의 유착도 없앨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재임시절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일견 경제정책에 실패한 듯 보였던 사건으로 (원문: seeming to bungle economic policy) 여러 지지자의 등을 돌리게 했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이 다시 물결치고 있다.


수 천 명의 국민들은 덕수궁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 나왔다.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들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위법 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큰 고통을 겪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국민들은 전두환의 뒤를 이은 노태우는 재임 중 셀 수도 없는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사실에 주목한다. 또한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역시 대기업으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철창신세를 졌다.


노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국민들은 검찰과 보수 언론이 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지난해 내내 금품수수 혐의를 무자비하게 추궁했음을 비난한다. 국민들 대부분은 본인과 가족에 대한 수사를 지시하거나, 최소한 수사를 부추긴 일로 이명박 대통령도 비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나고 자란 봉하마을에서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화환을 짓밟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들처럼 부패한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부패한 독재자나 다름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30년 전으로 후퇴했습니다.”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이동준(31)씨의 의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의 부패정권과는 달리 청렴함을 자랑스레 여기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측근에 의하면 최근에 먹지도 못하고 평소에 취미였던 밤 늦은 시간의 독서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서에서는 지지자들을 실망시켜 죄송하다고 적었다.


정치학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검찰에 대한 반감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문 교수는 국회가 검찰과 외관상으로 불확실한 주장을 흘린 언론사를 공식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불확실한 주장으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은 더욱 심한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전직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복수라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2012년까지 악순환이 끝날지는 정확히 모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하는 시점 말입니다.” 서울 분향소에 찾아온 지지자 일부는 정치적 복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즉,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 역시 퇴임 후 그 자신이 했던 일과 비슷한 정치적 복수를 당하리라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원문: http://www.nytimes.com/2009/05/25/world/asia/25iht-korea.html?pagewanted=1&ref=world


Recriminations and Regrets Follow Suicide of South Korean

SEOUL, South Korea — As South Koreans laid white chrysanthemums at makeshift memorials for their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many said Sunday that the once-popular champion of clean government had been driven to suicide by more than humiliating bribery allegations.

They directed much of their ire at the prosecutors and conservative media who relentlessly pursued the accusations of corruption against Mr. Roh and his family. Many accused the current president, Lee Myung-bak, of orchestrating the investigation, a move that could become a political liability for him.

Others expressed deeper misgivings that Mr. Roh was a victim of the legacies of South Korea’s authoritarian past — most notably the near ritual of incumbent presidents presiding over investigations of their predecessors.

“It has become a bad political habit for presidents in South Korea to try to gain support by punishing the former president,” said Kang Won-taek, a politics professor at Seoul’s Soongsil University. “What happened to Roh Moo-hyun shows that it is time to break this habit.”

The tendency to define a presidency by the failings of the one that came before took root as the country struggled to redefine itself in the early 1990s as a young democracy after years of dictatorships. Many Koreans were exhilarated as the first democratically elected governments punished the men who had resisted democracy for so long.

The sight of former President Chun Doo-hwan — a military ruler blamed for a crackdown of pre-democracy protesters that ended in 200 deaths — being paraded in a prison jumpsuit proved cathartic for the nation.

But political experts, and even many average Koreans, say that their nation’s struggle to shed its authoritarian past was never finished, and that investigation of Mr. Roh highlighted at least two other legacies: a powerful presidency and a justice system with few checks and balances, especially on its prosecutors.

At least so far, the subject of Mr. Roh’s culpability has been put aside, overwhelmed by the shock and sadness over his dramatic death on Saturday, when he threw himself off a cliff. In the weeks before that, he acknowledged that a businessman who supported him had given more than $6 million to his wife and son and his brother’s son-in-law while he was in office, but he denied that they were bribes. He said he did not know about the transactions until he left office.

The money for his wife had been used to pay for his son’s tuition at Stanford University, among other things, according to a top aide. In a country where education is key to social status, Mr. Roh, a self-educated lawyer, never won full respect from many people, despite having become a lawyer and the leader of a powerful economy.

Much of the outpouring of public anger since Mr. Roh’s death has focused on the murky ties between the Blue House, as the president’s office is called, and the Supreme Prosecutors’ Office, which led the investigation into Mr. Roh and other former presidents. These suspicions are also a hangover from the pre-democracy days, when prosecutors were seen as military henchmen, using the legal system to attack their political opponents.

“The prosecutors have become the most omnipotent force in Korean society today,” said Moon Chung-in, a political scientist at Yonsei University in Seoul and former adviser to Mr. Roh. “Their strength is a legacy of dictatorship that still affects us.”

Mr. Moon said that Mr. Roh actually ended up strengthening the power of prosecutors by weakening one check on their power: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the South Korean spy service used by military rulers against South Korea’s citizens. Mr. Roh appointed a former human rights lawyer as its director and curtailed many of its internal surveillance activities.

Mr. Roh also tried to rein in the prosecutors, but with less success. Though he weakened links between prosecutors and the Blue House, he failed to pass some of their powers to the police or create grand juries to oversee investigations.

In 2003, his first year in office, Mr. Roh also held a widely watched public debate with 10 prosecutors in which he called the prosecutors office a “powerful organization” that the Justice Ministry had “failed to rein in.”

Mr. Roh also came to office with promises to break the cycle of corruption that has plagued South Korean presidents, and made them vulnerable to investigation. He also vowed to curtail the powers of South Korea’s presidency and sever its links with the country’s “chaebol,” or big-business conglomerates.

Mr. Roh’s death unleashed a renewed wave of sympathy for a former president who had alienated many supporters by signing a free-trade agreement with the United States and seeming to bungle economic policy.

Many of the thousands who turned out at makeshift altars in front of an ancient palace in central Seoul seemed to feel that Mr. Roh had paid too high a price for a relatively petty infraction.

Many noted that Mr. Chun and his successor as president, Roh Tae-woo, were found guilty of accepting hundreds of millions of dollars of bribes while in office. Sons of the first two civilian presidents of the era, Kim Young-san and Kim Dae-jung, were also imprisoned for pocketing millions of dollars from large companies.

The mourners lashed out at the prosecutors and the conservative media who had relentlessly pursued accusations of corruption for the past year, after Mr. Roh had left office. Most also accused the sitting president, Mr. Lee, of guiding or at least encouraging the investigations. In Mr. Roh’s native village, Bongha, his supporters trampled a funeral wreath sent by the president.

“President Roh was not just another corrupt president. He was different,” said Lee Dong-joon, 31, an insurance planner. “But Lee Myung-bak is acting the same as the dictators. Our democracy has been set back 30 years.”

The former president, who had prided himself on being above South Korea’s corruption, could no longer eat or focus on his favorite pastime of late-night reading, said aides. In his suicide note, Mr. Roh apologized for disappointing supporters.

Political scientists said the suicide could cause a backlash against President Lee or even the prosecutors. Mr. Moon, the former Roh adviser, said the National Assembly might formally investigate the prosecutors, and the apparent press leaks of questionable allegations, which increased the pressure on Mr. Roh.

“Let’s see if this breaks the cycle of political vendettas” against former presidents, Mr. Moon said. “But we won’t know for sure if the vendettas are over until 2012, when Lee Myung-bak steps down.” Some supporters who gathered in Seoul said they thought the opposite would happen: that Mr. Roh’s suicide almost guaranteed that the current president would also face similar attacks once he leaves office.


* 텔레그래프/타임즈/BBC 기타등등 대충 훑어봤는데 뉴욕타임즈 기사가 제일 괜찮아서 올립니다.

  요약하자면

  '이 나라 국민들 죄다 우울증에 화병 걸리겠군(;;;;;;)'

  '전 대통령들은 완전 썩었던데 왜 그런 선택을 했지?'

  'MB, 지 predecessor 까는것도 적당히 좀 하지'

  라는 느낌이 묻어 나오는 기사들.

* 나머지도 슬슬 번역해 보겠음. 스압 견디고 읽어주신 분들 감사.


* 근데 정일이형 이 와중에 핵실험 하기에요....-_-


* 앞으로 며칠 간, 노무현 대통령 서거 관련 해외 언론 기사/칼럼을 번역해 올릴 예정입니다. (일본어/영어)

  번역의 목적은, 어차피 통 공부가 안 되는 것도 있고-_-

  해외신문을 읽다 보면 느끼는 거지만 같은 일을 두고도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실력은 형편없지만 조금은 공유하셨으면 합니다.

* 한국기사랑 비슷한 내용은 되도록이면 번역하지 않겠습니다.

* 일본 극우파 신문은 번역않겠음.; 정신 건강에 안 좋을듯 해서...

* 많이많이 읽어 주시면 감사. 허락 없이 퍼가셔도 됩니다. 출처 안 밝히셔도 됩니다.

* 댓글 관리할 자신 없어요. 소통을 거부하는 건 아니니 오역은 트랙백으로 부탁드립니다.

by 혜믹 | 2009/05/25 17:08 | 번역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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